변곡점 맞은 국제 통상질서…내년 RCEP 출범 후 변화와 영향은
우리나라 통상 영토 세계 GDP 85%로 확대…시장 다변화·신남방 정책 등 탄력
원산지 기준 단일화·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정부, 기업 ‘RCEP 활용’ 적극 지원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내년 2월 1일부터 공식 발효된다.
RCEP은 다자간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협정으로, 가맹국들 사이에 관세 장벽을 낮추고 체계적인 무역·투자 시스템을 확립해 교역 활성화를 이뤄내는 것이 핵심이다. RCEP이 출범하면 경제적 부문에 더해 통상 관련 규범 측면에서도 플러스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 경제를 아시아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RCEP 출범 후 어떤 변화가 기대되고,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정부의 기업 지원책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RCEP이란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과 비(非)아세안 5개국(호주·중국·일본·한국·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하는 다자무역협정이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 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FTA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RCEP은 규모면에서 전 세계 교역량의 약 3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한·일 간 체결하는 최초의 FTA로 한·중·일 3개국이 하나의 FTA 체제 아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수출입기업에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제4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모습.
RCEP 협정문은 상품 및 서비스 교역, 무역구제, 투자, 지식재산권 등 20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상품무역에서 관세 철폐율은 한·아세안 FTA 대비 품목별 관세를 추가 철폐해 국별 91.9~94.5%, 한·일 83%, 한·중·호주·뉴질랜드 91% 등이 적용된다.
서비스 무역은 내국민·최혜국 대우, 아세안의 문화 콘텐츠 분야·유통 분야 개방 등이 담겼다.
원산지 규정은 15개국에 대한 원산지 기준을 통합하고 원산지 증명 및 신고 절차 간소화를 추진한다.
지식재산권은 저작권·특허·상표·디자인 등 지재권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보호 규범 및 침해 시 구제 수단을 마련한다.
전자상거래의 경우 데이터의 국경간 이동 보장, 설비현지화 요구 금지 등이 내용이며 지식재산권은 상품 선정을 위한 악의적 출원에 대한 거절 및 등록 취소 가능 등을 골자로 한다.
RCEP의 출범으로 우리나라가 얻는 기대 효과는 막대하다. 통상영토가 세계 GDP의 85% 규모로 확장돼 시장 다변화와 신남방 정책 추진 등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15개국이 동일한 통상규범과 표준화된 통관절차를 적용 할 경우 수출 시장 다변화는 물론, 물량도 확대될 것으로 보여서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RCEP이 발효되면 신남방정책과 더불어 동남아 지역의 시장개방 효과가 과거보다 커져 수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며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추가적인 관세철폐가 적용될 자동차, 철강, 기계부품, 의료위생용품 분야에서 수출 기회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례로 인도네시아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업체의 경우 현재 최고 40%의 관세를 감수해야 하지만, RCEP이 발효된 뒤로는 관세가 0%까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산지 규정과 통관 절차 등에 따른 기업 비용을 증가시키는 장벽들 역시 상당부분 감소할 수 있다. 그동안 세탁기 수출시 FTA 특혜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호주·뉴질랜드·아세안·중국 등 각각의 다른 원산지 기준을 마련해야 했지만 RCEP이 발효되면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 기업편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대부분 공정이 이뤄져야 한국산 원산지로 인정을 받았지만, 내년부터는 RCEP 회원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도 한국산으로 인정받게 되고 관세 혜택을 받기가 수월해진다.
해외 투자나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 있어서도 기존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지를 점하게 됐다. 지식재산권 협정문에 따르면 현지에서 우리기업 상표 선점을 목적으로 하는 상표브로커 등의 악의적 출원을 거절하거나 등록을 취소할 수 있게 된다.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국내 유명 한 팥빙수 전문 프랜차이즈점의 경우 중국 상표브로커에게 상표를 선점 당해 중국의 짝퉁 프랜차이즈점에 밀려 중국 진출에 실패한 적이 있다”며 “RCEP이 발효되면 우리 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기반이 한층 두터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규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과 다자간 대화 채널이 마련된 점도 긍정적이다. RCEP이 발효되면 한국은 일본과 처음으로 FTA를 맺는 효과도 생기기 때문에 양국의 통상갈등도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RCEP은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첫 다자간 FTA로 일대일 협약인 두 나라 사이에 맺은 FTA보다 내용이 훨씬 복잡해 발효 초기 수출입 현장에서 각종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관세율, 원산지 정보 등 원스톱 검색 시스템(Tradenavi)을 12월까지 업데이트하고, 업종별 단체와 활용방안 설명회 및 지역 순회 간담회를 지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또 ‘RCEP 활용 가이드’ 등을 제작해 올해 중 배포하고 FTA 활용센터 관세사 교육 등을 통한 컨설팅 역량을 높일 방침이다.
관세청도 RCEP 활용을 돕기 위해 인천·서울·부산·대구·광주·평택세관에 ‘RCEP 활용지원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직원 146명을 지원센터에 배치해 현장 상담, 설명회, 간담회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함께 RCEP 발효 즉시 수출기업이 FTA를 활용할 수 있도록 RCEP 원산지인증수출자 지정특례 지원을 실시할 방침이다. 원산지인증 수출자 제도는 관세 당국이 원산지증명 능력이 있다고 인증한 수출자에게 원산지증명서 발급 또는 첨부서류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관세청 관계자는 “인증수출자 신청 건을 신속히 심사하고, 기존 인증수출자에 대해서는 품목별로 간이한 절차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자료출처=정책브리핑
김규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