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제47주년 4·19혁명 기념식 참석 |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7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관용과 책임의 정치문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4·19혁명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40주년 기념식(2000년)에 참석한 이후 이번이 두번째이다.
< 노무현 대통령 기념사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19혁명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오늘은 4·19혁명 마흔일곱 돌이 되는 날입니다. 뜻깊은 이날을 맞아 저는 먼저,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룩한 희생을 바치신 분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그리고 옷깃을 여미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그날의 상처로 지금까지 슬픔과 고통을 겪고 계신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 충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4·19가 되면 기념식과는 별도로 아침참배만 했습니다. 4·19의 역사적 의의와 비중에 비추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관행으로만 알고 몇해를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유가족 대표로부터 기념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보니 그동안 정통성 없는 정권이 해오던 관행을 생각 없이 따라 해왔던 일이 무척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4·19 기념식이 역사적 의기에 맞는, 바로 격에 맞는 격에 맞는 행사로 계속 치러지기를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4·19혁명은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기미년 3·1운동과 함께 우리나라 민권운동과 민주주의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역사적 사건입니다.
4·19혁명은 승리의 역사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좌절의 역사를 넘어서, 우리 민중이 처음으로 이루어낸 승리의 역사입니다. 정의를 위한 투쟁과 헌신은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 그 자체로 고귀한 것입니다만, 그중에서도 승리의 역사는 더 많은 씨를 퍼뜨리고 더 큰 열매를 맺게 하므로 더욱 값진 것입니다. 4·19혁명은 참으로 값진 승리의 역사입니다.
4·19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자 믿음의 뿌리입니다. 4·19의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4·19의 승리가 있었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10·16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10항쟁이 모두 4·19정신을 이어받았고, 마침내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영원히 기념할 것입니다. 4·19의 숭고한 정신을 실천하고, 이를 후세에 물려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4·19혁명의 승리는 1년여 만에 5·16 군사쿠데타로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도 그와 함께 짓밟혔습니다. 나라 살림을 일으켜 민주주의의 효용과 가치를 증명할 기회마저 도둑맞은 것입니다.
그 이후 30년 동안 5·16 쿠데타는 ‘혁명’으로 불리고 , 4·19혁명은 ‘의거’로 낮추어 불리는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싸운 끝에 93년이 되어서야 4·19는 다시 ‘혁명’으로 부활하여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그런 수모의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4·19는 우리 역사 속에, 그리고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의한 세력이 이 땅을 범하려 할 때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항쟁이라는 민주화의 대장정을 이뤄냈듯이 이 땅의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영원히 지켜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아직 우리 민주주의는 완성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에 완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는 저도 확신이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더 발전할 여지가 있고 또한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단계 더 성숙하고 진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오랜 세월, 반대를 용납하지 않고, 자유를 짓밟고, 자존심을 짓밟고, 사람의 양심을 짓밟고, 마침내 언론을 망치고, 사법권을 망치고, 그리고 고문, 투옥, 살인마저 마다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잔인했던 독재정권에 맞서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기나긴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참으로 힘겨운 ‘투쟁의 시대’를 걸어왔습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지금까지는 권력의 남용과 권위주의, 특권과 반칙,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와 같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에 매진해 왔습니다. 많은 저항과 갈등이 있었으나 민주주의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의 진전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개혁의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우리는 성숙한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관용과 책임의 정치문화가 필요합니다. 관용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부당하게 박해를 받아온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만, 이제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지 10년, 민주적 선거로 정권을 수립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협력의 수준을 연정, 대연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타협이 되지 않는 일은 규칙으로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합니다.
승자에게 확실한 권한을 부여하여 책임 있게 일하게 하고 선거에서는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책임정치입니다.
이렇게 해야 인권이 신장되고, 보다 공정하고 효율적인 민주주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힘을 모아 대화하고 타협하는 상생사회, 신뢰와 통합의 수준이 높은 선진한국을 만들어 나갑시다. 그것이 4·19의 정신을 올바로 살려나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4·19 민주영령들이 이 길을 환하게 밝혀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4월 19일
연합일보/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