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군자의 상징…동아시아 미술 속 호랑이를 만나다
평창올림픽 기념 특별전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韓國·日本·中國’’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자 영물(靈物)로 여겨져왔다. 또 상상 속 동물인 용과 더불어 잡귀를 물리치는 현실 속 신성한 동물이자, 덕(德)과 용맹함을 두루 갖춘 대인군자(大人君子)의 상징처럼 불렸다. 이런 동아시아의 용맹한 호랑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韓國(한국)·日本(일본)·中國(중국)’ 전시회(이하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가 바로 그것이다.
호랑이를 주제로 한 미술 전시회가 처음 열린 것은 1998년이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호랑이, 虎(호)’라는 전시를 통해 호랑이와 관련된 한국의 미술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번에는 2월 9일 개막하는 평창동계올림픽과 3월 9일 열리는 평창동계패럴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중국 국가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한민족의 신화, 한국의 호랑이
이번 특별전에서는 한국·중국·일본 3국의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미술 작품 속 호랑이뿐만 아니라 원시신앙과 불교, 도교 등 종교 속에서 표현되는 호랑이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또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의 삶 속에 오래전부터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호랑이 관련 유물과 자료들도 함께 전시된다. 38건의 회화 작품과 58건의 공예 작품, 5건의 조각 작품, 4건의 직물 작품 등 총 105건 145점의 호랑이 관련 유물과 미술작품을 선보인다. 지난 1월 29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회장을 들어서면 검은색 바위에 올라선 커다란 호랑이 조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조각 속 호랑이의 시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곧장 발길을 돌리면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호랑이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특별전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전시의 본격적인 시작점인 1부는 ‘한민족의 신화, 한국의 호랑이’다. 이곳에서는 고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호랑이에 대한 외경심이 담겨 있는 호랑이 미술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조선의 천재 화가 김홍도가 비단에 먹과 옅은 색을 입혀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를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맹호도(猛虎圖)’까지 만날 수 있다. 세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대중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용호도’ 전시를 둘러보는 관람객.(사진=C영상미디어)
|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용호도’ 전시를 둘러보는 관람객.(사진=C영상미디어) |
전시 중인 호랑이 미술 작품.(사진=C영상미디어)
|
전시 중인 호랑이 미술 작품.(사진=C영상미디어) |
그리고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 중 가장 큰 규모의 그림으로 알려진 ‘용호도(龍虎圖)’ 역시 이번 특별전에서 공개됐다. ‘용호도’는 조선 말 관청의 문이나 대청에 붙이거나 내걸었던 대형 걸개그림이다. 19세기 그려진 작품으로 가로 222㎝에 세로 217㎝ 크기의 용 그림과 가로 221.5㎝에 세로 218㎝ 크기의 호랑이 그림이다. ‘용호도’ 속 용과 호랑이 그림이 짝을 이루어 대중에게 같이 선보이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작품 외에도 호랑이를 주제로 제작된 백제시대 토기인 호자(虎子)와 불교 미술의 산신과 나한을 묘사한 작품, 또 군자와 벽사의 상징으로 그려진 호랑이 그림과 공예 작품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한민족의 신화, 한국의 호랑이’ 작품들을 지나면 ‘무용(武勇)과 불법(佛法)의 수호자, 일본의 호랑이’로 이름 붙여진 특별전의 2부, 일본 호랑이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무로마치 시대(1336~1573) 이후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사찰과 무가(武家)의 후원으로,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용호도(龍虎圖)’, 또 용맹함과 길상의 의미로 호랑이를 장식한 무기와 복식, 도자기, 장신구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일본의 호랑이 미술품 중 눈에 띄는 작품은 무가의 후원 아래 그려진 ‘용호도’ 병풍으로, 이 중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활동한 소가 조쿠안(曾我直庵)과 18세기에 활동한 가노 미치노부(狩野典信)의 작품들이 있다. 또 일본 특유의 화려하고 장식성을 갖춘 개성적인 화풍의 마루야마 오코(圓山應擧)의 ‘호소생풍도(虎嘯生風圖)’가 눈에 들어온다. ‘호소생풍도’는 ‘바람을 일으키는 호랑이의 포효’라는 제목과 달리 웅장하고 용맹한 호랑이 이미지가 아니라 귀엽고 개성적인 호랑이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 중인 호랑이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사진=C영상미디어)
|
전시 중인 호랑이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사진=C영상미디어) |
호랑이 모양의 띠 고리 C영상미디어/호랑이 모습을 본따 만든 토기 C영상미디어
|
(왼쪽부터)호랑이 모양의 띠 고리. 호랑이 모습을 본따 만든 토기.(사진=C영상미디어) |
중국인들의 수호자로 불리다
일본의 호랑이 작품들을 지나면 특별전의 3부인 ‘벽사의 신수(神獸), 중국의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중국에서 호랑이는 고대로부터 신격화된 동물이자 중국인들의 수호자로 인식돼왔다. 사신(四神)과 십이지(十二支) 속 주요 동물로 중국인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중국 미술에서 호랑이는 백수의 왕인 동시에, 위정자에게는 군자(君子)와 덕치(德治)를 상징했다. 또 맹수로서 전쟁과 죽음, 용맹함과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인 벽사로 받아들여져왔다. 이 같은 호랑이 이미지 때문에 주로 중국 지배층의 무기에 호랑이 문양이 사용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중국의 호랑이 미술품은 18세기 화가인 이세탁(李世倬)이 손가락으로 그린 호랑이 작품과 주로 19세기에 활동한 옹동화의 서예작품이다. 또 호랑이 모양의 허리띠 고리를 포함해 호랑이 토템을 보여주는 지배층의 무기, 호랑이 도자 베개 등 다양한 공예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중국국가박물관이 전시한 호랑이 모양 베개.(사진=C영상미디어)
|
중국국가박물관이 전시한 호랑이 모양 베개.(사진=C영상미디어) |
중국의 호랑이 작품을 지나면 ‘백중지세(伯仲之勢), 한·일·중 호랑이 미술의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꾸며진 4부 공간에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조선시대 작품인 ‘용맹한 호랑이(猛虎圖)’와 일본 에도시대(1603~1868) 작품 ‘유마용호도(維摩龍虎圖)’, 그리고 중국 상나라 때 제작된 ‘호랑이 장식 꺾창(靑銅虎首形內戈)’을 만나게 된다. 한자리에서 한·중·일, 3국의 호랑이 미술이 갖고 있는 특징을 잘 표현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별전의 마지막 구성인 5부는 ‘전통(傳統)과 변주(變奏), 동아시아 근현대의 호랑이’로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는 근대와 현대 문화 속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작가들이 호랑이를 새롭게 해석한 회화와 조각 등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야생호랑이 다큐멘터리 상영
특별전에는 동아시아 3국의 회화와 조각과 공예작품만 전시된 게 아니다.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있다. 전시장 입구 쪽에 마치 영화관처럼 마련된 영상 관람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정면과 좌우 벽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해 야생의 호랑이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호랑이, 우리 안의 신화(神話)’란 제목의 스크린X(영화관에서 전방 스크린뿐 아니라 좌우 벽면을 동시에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상영 시스템)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촬영 작가로 알려진 박종우 씨가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호랑이 야생보호소를 찾아 2017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촬영한 영상이다. 6분 50초짜리 길지 않은 영상이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야생에서 만난 호랑이의 거칠지만 신비롭고 웅장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자료출처:위클리공감)
깅형석rlagudtj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