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연강수량의 70%가 여름철에 집중돼 있는 물 부족국가이다. 1인당 연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6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 같은 사회·자연적 조건을 극복하고 경제발전과 산업화에 필수적인 전력 생산과 용수 확보를 위해 꾸준히 댐을 건설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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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충주댐 공사현장. |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우리나라 최대 저수용량을 가진 다목적댐인 소양강댐 준공일인 10월 15일을 맞아 ‘이달의 기록' 주제를 ‘자연과 인간의 조화, 댐 건설의 기록'으로 정하고 관련 기록물을 15일부터 누리집(
www.archives.go.kr)에서 제공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에 제공되는 기록물은 동영상 14건, 사진 15건, 문서 1건 등 총 30건으로 전력 생산과 용수 확보로 산업화를 가능하게 했던 1950~80년대 전국의 주요 댐(소양강댐, 충주댐, 섬진강댐 등) 건설 모습 등을 보여준다.
광복 이후부터 1950년대는 6.25전쟁으로 파괴된 댐을 복구하고 부족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우리 손으로 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댐이 북한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돼 분단 이후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전원(電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기술과 예산으로 건설한 충북 괴산댐(1957년), 1944년 완공돼 6.25전쟁으로 파괴된 강원도 화천댐(1957년)을 건설했다.
1960~8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 4대강유역 종합계발계획 등으로 여러 댐이 건설됐으며 기술적인 면에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인 시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1965년)을 필두로 가뭄과 홍수 조절, 용수 공급, 부족한 전력 공급 등의 목적으로 다목적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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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소양강댐 담수식. |
국내 최초이자 동양 최대 규모의 사력댐으로 가장 많은 저수용량을 가진 소양강댐(1973년), 낙동강수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안동댐(1976년), 금강수계에 최초로 만들어진 대청댐(1980년), 충주댐(1985년) 등 대규모 다목적댐이 차례로 준공됐다.
소양강댐 건설에는 연인원 500만명, 32톤 덤프트럭 30여대를 비롯, 스쿠퍼·진동다짐기·굴착기 등 국내에 처음 반입된 중장비들이 투입되기도 했다.
또 발전전용 춘천댐(1965년),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수문 15대가 설치된 발전전용 팔당댐(1974년), 대구 지역의 물 부족 해소를 위해 확장 건설된 생활·공업용수전용 가창댐(1986년) 등 전용댐 건설도 활발히 이루어져 바야흐로 댐 건설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댐 건설 기록을 통해 자연에 대한 도전과 공존을 지향해 온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안승근dkstmdr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