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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인가 호수인가 김삿갓 알려주오

30년 만에 개방 화순적벽

등록일 2014년11월14일 00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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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인가 호수인가 김삿갓 알려주오

비경을 찾아서, 30년 만에 얼굴 드러낸 화순적벽

 

화순적벽이 30년 만에 문을 열었다. 화순적벽은 전남 화순군 이서면에 위치해 있어 이서적벽으로 불리기도 하고 노루목적벽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시인 김삿갓이 이 경관에 빠져 일대를 방랑하다 생을 마감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사진=화순군청)

요즘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화순적벽(노루목적벽)이다. 화순적벽을 품고 있는 동복댐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후 30년 만에 개방됐기 때문이다.

동복댐은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이다. 광주시민의 60퍼센트가 이 물을 마시고 있다. 댐의 관리권도 광주시가 갖고 있다. 그동안 화순군과 여러 단체에서 개방을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광주시는 상수원 보호를 이유로 거절했다. 이때문에 화순적벽은 언제라도 한 번쯤 찾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광주와 전남의 상생발전 차원에서 광주광역시가 화순군의 요구를 받아들여 화순적벽을 개방키로 한 것이다. 주민들이 반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화순적벽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지닌 중장년층의 반가움은 더 컸다. 그동안 화순적벽은 댐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주민에 한해 설과 추석 및 성묘나 벌초 때만 출입을 허가해 왔었다.

적벽과 마주한 ‘망향정’.
적벽과 마주한 ‘망향정’.

최고 문학가들이 가슴에 품던 ‘조선 10경’

화순적벽 개방은 지난 10월 23일 적벽문화제로 시작됐다. 화순적벽에서 열린 이 행사는 동복댐 조성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과 지역주민이 함께한 화합의 한마당이었다.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이 함께 마련했다. 30년 만에 얼굴을 드러낸 화순적벽은 수려한 절경을 뽐낸다. 산의 형세가 노루의 목을 닮았다고 해서 ‘노루목적벽’, 행정구역이 이서면에 속해서 ‘이서적벽’으로도 불린다.

화순적벽은 거대한 암벽이 하늘로 치솟듯 우뚝 서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깎아지른 암벽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것처럼 웅장하다. 수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다는 희소성까지 더해져 장엄하기조차 하다. 적벽을 감고 흐르는 동복댐의 물길도 수려하다. 울긋불긋 단풍 든 옹성산이 휘감고 있어 풍광도 빼어나다. 절벽 위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면 산그림자가 물속에 드리워진다. 산을 넘어온 가을바람에 절벽의 풍광이 수면에 흔들리면 황홀경을 연출한다. 붉은 빛깔로 물든 절벽이 파란 하늘과 푸른 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린다. 선경(仙境) 중의 선경이다.

화순적벽까지 이어진 길은 그동안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탓인지 대부분 비포장도로다. 차가 속도를 내기 어려울 정도. 천천히 산길을 달리다보면 어느새 시야가 확 트여 동복호를 마주한다.
화순적벽까지 이어진 길은 그동안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탓인지 대부분 비포장도로다. 차가 속도를 내기 어려울 정도. 천천히 산길을 달리다보면 어느새 시야가 확 트여 동복호를 마주한다.

가까이 다가가 망향정에서 보는 화순적벽은 더 아름답다. 가파른 절벽의 높이가 50미터쯤 된다. 물속에 잠긴 것도 그만큼이다. 수직으로 100미터가량 되는 바위벼랑이 거꾸로 서 있는 셈이다. 그 모양새가 잔잔한 물에 비친 반영도 그림처럼 미려하다.

절벽의 폭도 넓다. 하늘과 호수 사이에 펼쳐진 아담한 병풍 같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형상의 옹성산을 휘돌아 나오면서 이룬 절경이다.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흐르는 물도 창연하다. 왜 ‘적벽’이란 이름을 얻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이곳을 ‘적벽’이라고 처음 부른 이는 선비 최산두(1483∼1536)였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유배돼 온 그가 이 거대한 석벽을 발견하고 <삼국지>에 나온 중국의 적벽을 떠올렸다고 전해진다. 같은 시기에 유배 온 조광조(1482∼1519)는 사약을 받기 전까지 이곳에서 배를 타면서 한을 달랬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은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며 감탄했다. 적벽이 신선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하서 김인후(1510∼1560)도 적벽시를 지었다. 조선 후기 시인인 삿갓 김병연(1807∼1863)은 적벽의 장관에 빠져 이 일대에서 방랑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1762∼1836)도 젊은 시절 여기에 들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많은 풍류묵객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한 적벽이었다.

그만큼 화순적벽은 조선에서 풍광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조선의 비경 가운데 열 손가락에 꼽히는 조선 10경의 하나였다. 지금이야 화순군 하면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군을 떠올리지만, 근대까지는 적벽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지금은 전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돼 있다. 조만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승격될 전망이다.

동복댐이 건설되기 이전의 화순적벽은 높이 100미터에 이를 정도로 큰 절벽이었다. 지금은 물에 잠겨 절반만 보이지만 그마저도 웅장하다.
동복댐이 건설되기 이전의 화순적벽은 높이 100미터에 이를 정도로 큰 절벽이었다. 지금은 물에 잠겨 절반만 보이지만 그마저도 웅장하다.

망향정 입구에는 통천문(通天門)이라 적힌 석문과 돌탑이 세워져있다.
망향정 입구에는 통천문(通天門)이라 적힌 석문과 돌탑이 세워져있다.

11월 말까지 한시 운영, 2015년 3월 다시 개장

이 적벽은 댐 건설로 물에 잠기기 전까지 학생들의 소풍지였다. 대학생들의 단골 MT 장소이기도 했다. 적벽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자갈과 모래밭도 넓었다. 남도의 대표적인 물놀이 장소였다. 당시 적벽의 위용은 대단했다. 거대한 절벽이 거꾸로 솟아 있고, 그 사이에 제법 위용을 뽐내는 폭포가 있었다. 협곡에 절집 한산사도 있었다. 물길에는 삿대를 저어서 가는 나룻배가 떠다녔다. 이 배를 타고 즐기는 뱃놀이는 적벽의 대표적인 풍류였다.

낙화놀이도 볼 만했다. 마을의 장정들이 이 절벽에 올라가 짚덩이에 불을 붙여 아래로 떨어뜨렸다. 불꽃송이가 맑은 물에 어리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물속에 불을 밝힌 것이다. 이 놀이는 해마다 4월 초파일 밤에 펼쳐졌다.

늦가을부터는 수위가 낮아져 적벽이 더 커보인다. 보통 여름철에는 적벽의 높이가 40~50미터이고, 가뭄 때는 70미터 높이까지 보인다.
늦가을부터는 수위가 낮아져 적벽이 더 커보인다. 보통 여름철에는 적벽의 높이가 40~50미터이고, 가뭄 때는 70미터 높이까지 보인다.

수몰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망향정(望鄕亭)도 애틋하다. 망향정은 수몰지역 주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쉼터다. 댐이 건설되면서 정들었던 고향을 떠난 주민은 창랑, 월평 등 이서지역 15개 마을 5천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수몰된 마을의 유래비가 여기에 세워져 있다. 망향탑과 망배단도 있다. 수몰민들이 명절 때마다 모여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다. 적벽의 아름다움을 새긴 적벽동천, 적벽가비, 적벽팔경비도 세워져 있다. 망향정에서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망미정(望美亭)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이 지은 정자다. 인조가 청태종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해 은둔하면서다.

화순적벽 바로 밑에 있던 것이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다시 지었다. 그때 현판을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다. 지금까지도 김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정자 앞이 화순적벽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망향정 옆으로 송석정도 있다. 조선 숙종 때 석정처사 한명이 지은 정자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1년 전 다시 지었다. 적벽의 옆모습과 동복댐의 잔잔한 호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자료제공:위클리공감

 

 

장서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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