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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칼럼)보수는 보수답게 진보는 진보답게

이제 소모적인 국민 사기극 걷어치워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록일 2007년03월09일 00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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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를 마친 1983년 이후 나를 괴롭혀 온 악몽이 하나 있다.  군대에 또 가는 꿈이다.

그 군대에 가는 게 아니다. 1310으로 시작되는 내 군번과 입대일 전역일까지 모두 기억 하는데도, 다시 입대해 이병 계급장을 다는 것이다.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다.

이건 꿈일 거야, 사실일 리가 없어! 몇 번이나 악을 쓴 끝에야 잠을 깬다. 무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이런 꿈을 꾸곤 했다. 듣자니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꿈 때문에 잠을 깨는 게 몇 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 희귀한 사건이라는데, 정말 부럽다.

다행히 나도 이제는 군대 다시 가는 악몽과는 작별한 것 같다. 여의도에서 과천으로 일터를 옮기면서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다른 꿈이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싸우는 꿈이다. 주로 기획예산처 장관과 싸우는데, 다른 부처 장차관이나 국장이 상대역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느 날 밤에는 회의를 하면서 일장 연설을 하는 꿈을 꾸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10분 넘게 열변을 토했는데 들어보니 잠꼬대치고는 제법 조리가 있기는 했다고 한다. 

꿈에서도 기획예산처 장관과 싸워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는 대한민국은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안고 나온 아기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의지할 자식도 재산도 돈도 없는 노인들, 원인조차 모르거나 원인을 알아도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걸린 이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장애를 얻은 어른들, 자신에게 닥친 크고 작은 시련과 삶에 대한 회의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들, 일해도 일해도 가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보건복지부의 이른바 ‘정책고객' 또는 ‘정책수요자'들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빛과 그늘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주로 그늘을 살피는 일을 맡고 있기에, 과천 청사 보건복지부 장관실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눈물과 회한, 슬픔과 절망으로 넘쳐 흐른다.

이곳에 작지만 소중한 희망의 씨앗을 뿌려 기쁨과 용기를 싹 틔우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인 것이 바로 돈이다. 선천성 장애를 예방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이 곧게 자라나게 하려면, 가난한 노인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고 장애인들에게 경제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가장이 암에 걸린 가족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이 용기와 내면의 힘을 기르게 하는 데도 돈이 든다. 돈만 가지고 되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 역시 별로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는 돈을 많이 쓰지만, 그래도 돈이 언제나 부족하다. 내가 과천에 온 뒤로 돈 때문에 싸우는 악몽을 새로 얻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나는 기획예산처를 무던히도 괴롭혔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를 다녀가면 기획예산처에 비상이 걸린다는 소문이 단순한 소문만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예산을 적잖이 빼앗긴 부처 공무원들에게는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그늘을 살필 돈은 언제나 모자라

그런데도 신문과 방송 보도를 보노라면 날마다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루게릭 병이나 혈우병 같은 희귀 난치성 질환에 걸린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국민의 눈시울을 적신다. 홀로 사는 가난한 노인들의 집을 고쳐주거나 산간벽지 무의촌을 찾아가 겨우내 목욕 한 번 하지 못한 연세 드신 농민들의 건강진단을 해주는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장관인 내 입에서도 정부는 도대체 무얼 하느냐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손과 발이 자유롭지 못해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 그리는 화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에는 왜 저렇게 좋은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가 없느냐고 묻는다.

천박한 신자유주의 사조에 휘둘린 정부가 부와 소득의 양극화를 조장해 서민의 삶이 파탄에 빠졌다는 지식인들의 질타가 날마다 귀를 때린다. OECD 평균에 비해 너무 낮은 공적 사회지출을 근거로 삼아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비난도 들린다. 장애인 단체나 진보적 보건의료단체들이 보건복지부 장관 물러나라고 요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일이 통계수치를 들어 참여정부가 이 문제를 직시하고 있으며 지난 4년간 이렇게 노력해서 저렇게 문제를 개선했노라고, 또는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았노라고 말해 보아야 별 소용이 없다. 그런 통계를 들여다보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장관이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도 그리 현명한 일은 아니다. ‘또 언론 탓'이라는 비난만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항변하면 할수록 그만큼 매를 더 벌 뿐이다.

하지만 매를 벌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지금 우리 국회와 정당,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거대한 ‘국민사기극' 또는 ‘가면무도회'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가난과 질병과 장애와 소득 없는 노후라는 시련에 직면한 국민들의 절절한 사연을 거론하면서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질타한다. 그러나 돈 없이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거의 모두가 눈을 감는다.

국회, 소외계층 사업비 깎아 도로건설 투입

한나라당은 시행 첫 해에 11조 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되어야 할 기초연금제 법안을 발의하면서 동시에 국민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는 민생파탄론으로 정부를 공격하면서도 노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비를 1천억 원이나 삭감해 도로건설 등에 투입했다.

민주노동당은 해마다 2천억 원 넘게 들어갈 6세 미만 아동 무료예방접종을 시행하도록 하는 법률을 발의해 통과시켰노라고 자랑하면서도,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담배값 인상에는 전혀 협조하지 않았으며 다른 재원조달 대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마치 정부가 일부러 예방접종사업을 포기한 것처럼 비난한다.

신문시장을 압도하는 보수신문들은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모든 노력을 ‘작은 정부론'으로 공격한다. 1면이나 사회면에는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양극화 기획기사를 실어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면서, 오피니언 페이지는 ‘세금폭탄'과 ‘큰정부'를 비난하는 사설과 칼럼으로 채워넣는다.

진보를 표방하는 신문들은 정책담론 공방에서 그렇지 않아도 열세에 처해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는 정부를 ‘신자유주의'로 몰아 공박한다. 정부지출의 증가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정책의 실시를 요구하면서도 세입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수단에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반대한다.

아마도 어떤 언론사들은 이 칼럼에 대해 보도하면서 보건복지부장관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또 언론탓만 한다고 비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언론탓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정부와 공직사회가 일을 다 잘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도 많은 혁신을 했지만 낭비를 줄이고 재정지출을 합리화하는 일에 더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관행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하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공직사회의 특권과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더욱 더 솔직하게 반성하고 혁신해야 한다.

이제 소모적인 국민사기극 걷어치워야

그러나 교정해야 할 정부의 오류가 아직 숱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탓만 한다는 비난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말한다. 이제 이 소모적인 국민사기극을 걷어치워야 한다. ‘작은 정부론'을 옹호하는 정치인과 언론인, 지식인들은 정부지출의 증가를 동반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최소한 그런 일을 적게 한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만이라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정부지출의 증가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과 언론인, 지식인들은 그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말하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다. 유력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개인과 사회의 책임 분담에 대한 철학이다. 모든 문제는 개인의 책임인 동시에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보수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며 진보는 사회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보수는 상대적으로 작은 정부를 옹호하며 진보는 큰 정부 또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내 주장은 보수가 좋다거나 진보가 좋다는 게 아니다. 보수는 보수답게, 진보는 진보답게, 책임 있는 자세로 토론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이 어느 쪽이든 분명하게 선택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절충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 참여정부만을 옹호할 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참여정부 뒤에 들어설 그 어떤 정부도 이 국민사기극의 덫에 갇히면 국민의 신임을 받기 어렵다고 보기에 하는 말이다.

송영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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