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길 열리니 사람들이 돌아오네
영산강 죽산보 개방행사…가을 축제를 즐기다
지난 8일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일대. 나지막한 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다시평야의 누런 나락이 곧 추수가 시작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나주에서 나는 쌀 중에도 맛이 으뜸이라며 마을 주민들 자랑이 대단했다. 또 마을을 따라 영산강으로 이어진 지방도로 주변으로 자주 눈에 띄는 ‘구진포 장어’ 식당 간판으로 짐작할 수 있듯, 이곳은 장어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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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8일 죽산보 개방행사가 한창인 가운데 행사에 참여한 지역주민들이 죽산보 공도교를 건너보고 있다. |
영산강에 건설된 죽산보 개방행사가 열린 이날은 쌀과 장어에 이어, 나주시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탄생하는 날이기도 했다. ‘영산강 새물결맞이 죽산보 축제 한마당’라는 행사명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날 행사는 당초 주최측이 예상했던 참석자 2000여명을 훌쩍 넘어 4000여명 가까이 참석해 죽산보 탄생을 기념했다.
◆ 뱃길이 영산포구로 다시 이어지다
내륙과 바다를 이어주는 영산강은 호남의 구석구석에 물자를 실어 나르고 사람들을 이어줬다. 나주는 영산강의 중심도시였다. 하지만 영산강은 최근 몇십 년 동안 중병에 앓고 있었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바닷길이 끊겼고, 상류 곳곳에 댐이 생기면서, 물은 흐르지 않고 썩어갔다. 물고기도 살수 없는 5급수로 전락하면서 그 유명했던 ‘구진포 장어’도 맛보기 힘들어 졌다. 그야말로 영산강은 절망의 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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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보 통선문을 통해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온 왕건호가 이날 취항식을 갖고 영산강 뱃길이 다시 이어졌음을 선언했다. |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이제 새로운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영산강살리기사업을 통해 강바닥의 퇴적토를 준설하고 죽산보를 건설해 강 수위를 높임으로써 물을 깨끗해지고 뱃길은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고려시대 초기 서해와 영산강을 오르내렸던 고대선박 나주선(羅州船)을 복원한 ‘왕건호’ 취항식으로 시작됐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승언(78)·장근순(77)씨 부부는 “옛날에는 서해 바다에서 영산포구까지 황포돛배가 올라와 각종 물자를 실고 내리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었는데, 하굿둑이 생긴 뒤부터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며 “오늘 다시 배가 다니는 것을 보니, 앞으로 나주가 더 좋아지려나 보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장씨는 “사실 4대강살리기 사업이 막 시작됐을 때는 나도 반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극 찬성이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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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언 할아버지와 장근순 할머니가 양산으로 햇빛을 가린 채 왕건호 취항식을 지켜보고 있다. |
이날 황포돛배 무료체험 행사 지원에 나선 박정사(68, 황포돛배 1호) 선장은 “이전에는 죽산보 하류까지만 배가 다닐 수 있었는데, 영산강살리기 사업을 통해 강바닥을 준설한 뒤부터는 수위가 6~7미터까지 높아져 상류지역까지도 배가 다닐 수 있게 됐다”며 “물이 많아지니까 수질도 5급수에서 2급수까지 개선돼 사라졌던 물고기들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까지는 서해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과 남도 들녘에서 거둔 곡식을 실은 황포돛배가 영산강을 따라 영산포구까지 올라왔었다. 이렇게 모여든 물자들은 호남은 물론 전국으로 다시 보내졌다. 그야말로 영산포구는 남도 교류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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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황포돛배을 타보기 위해 줄을 지어섰다. |
황포돛배 체험행사에 참여한 김병호씨는 “황포돛배를 처음 타보는데 나름 색다른 맛이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정식으로 배가 운항돼 영산포구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면 가족과 함께 다시 한번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뱃길이 열린 영산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은 이 지역 자전거동호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광주시민공원에서 이곳 행사장까지 35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 온 위승기씨는 “새로 조성된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며 “나주지역 자전거동호인들이 200여명 정도 되는데, 이번 자전거길 조성을 계기로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담양에서 영산강 하굿둑으로 이어지는 220킬로미터 규모로 영산강을 따라 담양과 나주의 주요 역사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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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공원에서부터 35킬로미터를 달려 죽산보까지 달려온 나주지역 자전거동호인들. |
◆ 고향 떠난 지 40년, 사람도 다시 돌아오다
나주를 떠나 40년 동안 서울에서 생활했던 이은성씨는 올해 초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40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많이 변해 있었다. 영산강을 따라 영산포구까지 황포돛배가 다니던 어렸을 적 기억이 현실에서는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었다. 이씨는 영산강에서 다시 황포돛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이씨는 “귀농하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이 들어서까지 각박한 서울에서 사느니보다 물 좋아진 고향 나주에서 옛모습을 다시 보면서 농사지으며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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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귀향한 이은성씨. |
이씨는 또 “예전에는 비가 많이 오면 여기 다시평야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물난리를 겪은 기억이 난다”며 “올해 장마 때는 다른 곳보다 강수량이 적은 탓에 물난리는 겪지 않았다. 앞으로 비가 많이 오더라도 죽산보 조절을 잘 하면 다시평야가 잠길 위험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왕건호와 황포돛배가 통선문을 통해 상류에서 하류로 이동하는 모습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왕건호가 통선문 안으로 진입하자 상류 쪽 문이 완전히 닫힌 후 물을 하류 쪽으로 서서히 빼기 시작했다. 하류 쪽과 수위가 같아진 뒤 문이 다시 열렸고 왕건호는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하굿둑 쪽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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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자전거를 타보고 있는 행사 참가자들. 뒤에 황포돛배와 어울려 새로운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
한편, 이날부터 주민들에게 본격적으로 개방된 죽산보는 총 163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으며, 지난 2009년 12월 첫삽을 뜬 뒤 184m의 친환경 가동보와 4.5㎞의 옛강 복원, 수변생태공원, 소수력발전소, 자전거길 등이 조성됐다.
특히 4대강사업을 통해 조성된 전국 16개 보 가운데 유일하게 유람선이 드나들 수 있는 수문이 만들어져 지난 1976년 이후 34년간 끊겼던 영산강 뱃길도 다시 열렸다. 죽산보의 탄생으로 뱃길이 열리면서 목포에서 죽산보를 거쳐, 영산포, 그리고 승촌보까지 70㎞ 구간에서 유람선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으며, 앞으로 왕건호(100t 규모)와 황포돛배가 운항할 예정이다.
자료제공: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