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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산업, 신흥국 저원가 기업 경계 경보 울린다'

등록일 2007년07월29일 00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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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전자산업, 신흥국 저원가 기업 경계 경보 울린다'
 2000년대 들어 중국, 대만, 터키 등 신흥국의 저원가 기업들이 빠르게 입지를 강화하며, 향후 경쟁 구도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신흥 경쟁자들의 부상과 거센 도전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 기업들의 거침없는 하이 킥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와 같은 신흥 지역을 유망 시장이나 생산 기지의 관점에서 접근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신흥국 저원가 기업들의 부상과 거센 도전에 대한 전략적 대응 또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철강 산업에서인도의 미탈 스틸(Mittal Steel)은 2006년 유럽의 아르셀로를 인수하며 업계 1위가 되었다. 항공 산업에서도 브라질의 엠브라에르(Embraer)가 세계 4위로 비약하며 보잉과 에어버스의 과두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통신 서비스 시장에서는 차이나 모바일(중국), 차이나 유니콤(중국), 아메리칸 모빌(중남미) 등 신흥국 통신 사업자3사가 가입자 기준으로Top 5권에 포진해 있다.

최근 발표된 포쳔 글로벌 500 순위에서도 신흥국기업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1997년과 2007년 자료를 비교해보면, 미국 기업은 173개에서 162개로 11개 감소하고, 일본 기업도 110개에서 67개로 43개 줄었다. 반면 BRICs 및 중동, 동남아, 남미 등 신흥국 국가의 기업 수는 24개에서 64개로 10년 만에 2.5배 가량 늘어났다. 선진국 대기업들이 사업 환경 변화, 경쟁력 약화, 구조조정 등으로 고전하는 동안, 점점 더 많은 신흥국 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전자 산업에서도 신흥국 기업들이 빠르게 입지를 강화

첨단 기술이 중요한 특성상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 기업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주도해 온 전자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선진기업 동향에만 주목하던 사이에 중국, 대만, 터키 등 신흥국의 저원가 기업들이 빠르게 입지를 강화하며 기존 경쟁 구도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이얼(Haier), 레노보(Lenovo),화웨이(Huawei) 등 중국 전자 기업들은 거대 내수 시장, 정부 지원,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 중국의 세계 공장화 추세 등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중국 신식사업부의「차이나 IT 100」에 따르면 중국 100대전자 기업의 매출은 2001년 4,980억 위안(약 79조 원)에서 2006년 1조 1,236억 위안(134조 원)으로 연평균 17.7%의 고성장세를 기록했다. 중국의 50대 전자 기업의 매출은 2006년 총 9,761억 위안(116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의 전기 전자 업종 상장 기업 47사가 거둔 114조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기술력, 브랜드력에서 한수 아래라고 여겨졌던 대만 전자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만 기업들은 주로자체 브랜드 없이 수탁제조(EMS)나 수탁설계제조(ODM)의 형태로 사업한다.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제품의 빠른 범용화와 가격 경쟁 격화, 구미 기업들의 제조 아웃소싱 확대에 힘입어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홍하이(Hon Hai), 에이서스텍(Asustek), 퀀타(Quanta) 등 10대 대만 전자 기업들의 매출은 2002년345억 달러(41조 원)에서 2006년 1,316억 달러(122조원)로 연평균 39.7%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대만은 이미 PC 및 주변기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대만의 시장조사기관인 MIC(`07.1) 에 따르면 2006년 대만 기업들은 생산량 기준으로 노트북PC에서 글로벌시장의 87.5%, LCD 모니터는 73.4%나차지했다.

터키 전자 산업도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유럽·중동·러시아를 잇는 지리적 잇점, EU와의 관세동맹,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 경제 위기의 극복 등에 힘입어, 터키는 2000년대 들어 유럽권의 생산 기지로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첼릭(Arcelik)이나 베스텔(Vestel) 등 토종 터키 기업들이 유럽 및 러시아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터키 전자 산업의 생산 규모는 2000년 29억 달러(3.7조 원)에서 2005년 82억 달러(8.3조 원)로 연평균 22.9% 성장했다. 물론 이는1,000억 달러 규모를 상회하는 한국, 중국, 대만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 전자 산업의 성장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산업 기반이 약한 신흥국에서도 전자 기업들의 출현이 가능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예로써 백색가전의 경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슬로베니아에서 고렌제(Gorenje)가, 멕시코에서 마베(Mabe)가 새로운 다크 호스로 성장 중이다.

신흥 도전자들, 일본 전자 기업보다 영업 성과 우수

놀랍게도 2000년대 중국, 대만, 터키의 신흥 도전자들의 영업 성과는 그간 전자 산업을 주도해왔던 일본 기업들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림 1>처럼 2002년에서 2006년까지 마쓰시타, 히타치, 소니, 후지츠, NEC 등 5개 일본 전자기업의 평균 매출성장률은 1.9%, 영업이익률은 1.3%에 불과하다. 산업 내 경쟁력 약화, 구조조정의 여파로 매출 성장이 정체되고, 가격경쟁, 고인건비, R&D 비용 급증 등으로 수익성까지 악화된 결과이다.

이에 반해 중국, 대만, 터키의 상위 신흥도전자들은 성장성 측면에서 대부분 일본 기업을 크게 상회했다. 수익성 또한 상당수가 일본 상위 5사보다 우월하다. 사실 성장성은 저가 판매로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는 특성상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수익성마저 일본 기업들보다 우수한 점은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일반적으로 저원가 기업들의 경우성장을 위해 수익을 희생하는 특성상 성장성과 수익성이 반비례한다. 이러한 상식과는 반대로 <그림 1>에서는 성장성과 수익성이 비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즉 신흥 도전자 기업들의 경우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일수록 수익성도 높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고성장, 고수익을 동시 실현

이러한 특징은 대표 기업들의 경우 더욱 뚜렷하다. 중국의 화웨이, 대만의 홍하이, 터키의 아첼릭 등은 고성장, 고수익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화웨이는 중국제1의 통신장비 회사로, 유무선 통신 장비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제품군과 경쟁사 대비 40% 가량 저렴한 가격을 무기 삼아 시장을 파죽지세로 점령해 가고 있다. 특히 신흥국 통신 사업자를 중점 공략한 결과, 매출이 2002년 21억 달러에서 2006년 84억 달러로 연평균 41% 고공 성장했다. 영업이익률도 2006년 12%로 저가 전략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역시 높은 편이다.

대만 홍하이의 질주도 거침없다. 홍하이는 PC,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 전반을 수탁제조한다. 최근에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 모토롤라의 RAZR 뿐만아니라 애플의 아이폰까지 생산하고 있다. 뛰어난 제조 기술, 부품/모듈의 수직 통합, 부품 조달에서 제조/물류까지 토털 솔루션의 제공, 공격적인 M&A에 힘입어 홍하이의 매출은 1999년 18억 달러에서 2006년405억 달러로 7년 만에 22배나 껑충 뛰었다. 영업이익률도 5.6%로 선진 전자 기업에 필적한다.

터키의 아첼릭은 백색가전 기업으로 2000년대에 터키의 베코(Beko), 독일의 그룬디히(Grundig) 등 자국 및 서유럽의 지역 브랜드들을 인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터키의 지리적 잇점을 십분 활용해 유럽 및 중동, 러시아를 집중 공략한 결과, 매출이 2002년 20억 달러에서 2006년 49억 달러로 연평균 25% 성장했고, 2006년 영업이익률도 7.1%에 달했다. 세계 1위 백색가전 기업인 일렉트로룩스의 영업이익률이 3.9%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인 셈이다.

신흥 저원가 도전자들의 5가지 특징

이처럼 신흥 저원가 경쟁자들이 기존 통념과는 달리 고성장 고수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웨이, 홍하이, 아첼릭 등 대표적인 신흥 저원가 기업들의 고성과 비결은 ▲ 차별적인 저원가 구조의 구축 ▲ 저가격 + 기본 품질 + α의 추구▲ 제조/R&D 기반을 이용한 빠른 다각화 ▲ M&A를 통한 공격적인 사업 확장 ▲ 기업가 정신, 사업간 시너지, 과감한 실행력 등인 것으로 판단된다.

● 차별적인 저원가 구조의 구축

먼저 신흥 저원가 경쟁자들은 저임금 제조 노동력의 활용에 머무르지 않고, 가치사슬 상에서 차별적인 저원가 구조를 구축해왔다. 예를 들어 홍하이는 배터리, 케이스, LCD, 카메라 모듈 등 다양한 주요 부품을 내재화하고, 협력 부품 기업의 엄격한 관리를 통해 구매원가를 절감했다. 제조 상의 원가 경쟁력을 구매 상의수직 통합과 규모의 경제로 확장시킨 것이다.

화웨이의 경우 제조 뿐만 아니라 R&D에서도 저원가 체제를 구축했다. 구미의 선진 플랫폼 기업과 제휴하여 기초 기술을 얻고,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제품화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중국 뿐만 아니라 인도, 러시아의 저비용 R&D 인력까지 활용 중이다. 이에 따라 제품 라인업이 시스코, 알카텔, 노키아를 합한 것보다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매출 대비 R&D 비용은 선진 경쟁사들의 12~14%보다 낮은 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아첼릭의 경우도 상대적인 고수익의 비결이 모터, 컴프레서 등 핵심 부품의 내재화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저가격 + 기본 품질 + α의 추구

성공한 신흥국 전자 기업들은 저가격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본 품질과 차별적 가치 제공을 강조하며 다른 저원가 기업들과 차별화했다. 하이얼의 회장 장루이민이 1984년 불량 냉장고 76대를 쇠망치로 파괴한 일은 기본 품질의 강조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이다.

또한 홍하이는 정교한 제조 기술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다. 다른 EMS 기업들이 저원가 단순 제조에 머무르는 반면, 홍하이는 금형, 케이싱, 조립 분야의 생산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그 결과 아무리 복잡한 제품 형태라도 고객 요구대로 제조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의 이음새 없는 마감 처리는 홍하이의 레이저 용접 기술의 소산이다.

한편 화웨이는 방대한 제품에 기반한 저원가 토털솔루션 제공이 강점이다. 네트워크 망을 처음부터 새로 구축해야 하는 동남아, 아프리카, 동유럽의 신흥국 통신 사업자들은 기지국에서 가입자 접점 장비까지 다양한 제품을 필요로 한다. 화웨이는 거의 모든 유무선 장비를 취급하고 가격이 경쟁사 대비 40% 이상 저렴하여, 신흥국통신사업자들에게크게어필할수있었다.

● 제조 기반을 이용한 빠른 다각화

또한 신흥 도전자들은 노동력, 부품, 공장, 물류, 고객 등 공통 제조 기반을 활용해 취급 제품군을 빠르게 다양화했다. 첨단 기술력과 브랜드력을 갖춘 선진 기업들과 특정 제품 시장에서 1, 2위를 놓고 정면 대결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을 잠식하는 형태로 사업을 고속 성장시키는 우회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제품 다각화는 특히 홍하이의 성장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사실 홍하이는 1990년대 중반만해도 커넥터, 케이스 등 범용PC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에 불과했다. 여기서 얻어진 델, HP 등과의 거래관계를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 PC 조립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2001년부터 휴대폰 부품 사업을 시작하여, 2003년 노키아의 부품 업체인 핀란드의 에이모(Eimo)를 인수해 노키아와 거래선을 강화하고, 같은 해에 모토롤라의 멕시코 공장을 인수하여 휴대폰 조립 사업을 본격 확대했다. 나아가 PC나 휴대폰 조립에서 얻어진 제조 노하우를 확장하여 게임기, 통신장비,DVD, 카메라등 다양한 사업군에도 손을 뻗쳤다.

● M&A를 통한 공격적 사업 확장

흔히 M&A는 풍부한 자금력과 거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선진 기업들의 전유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신흥 도전자들 중에는 공격적인 M&A로 사업을 확장하는 기업들이 많다. 물론 모든 신흥 도전자들이 M&A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TCL의 톰슨TV, 슈나이더 가전, 알카텔 휴대폰 사업 인수는 사실상 실패했다. 중국 레노보의 IBM PC 사업 인수도 성과가 기대 이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흥 도전자들이 M&A에 적극적인 이유는 단기간에 압축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홍하이의 고속 성장과 빠른 다각화도 <그림 2>처럼 주로 부품 기업을 인수하며 신분야 진출을 위한 기술과 납품 고객선을 확보한데 힘입은 바 크다.

터키의 아첼릭도 해외 현지 브랜드 기업을 인수하며 성장해 왔다. 현지 기업의 제품 라인업과 마케팅망, 제조 기반을 인수하면, 단기에 시장에 진출하고 브랜드 신규 구축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2002년에는 독일의 블롬버그(blomberg), 오스트리아의 엘렉트라브레겐즈(Electrabregenz), 루마니아의 악틱(Arctic)을 인수했다. 또한 2003년에는 영국의 레져(leisure), 2004년에는 독일의 대표 브랜드가전 기업인 그룬디히(Grundig)마저 인수하여 서유럽 각국의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최근에는 아스틱(Arstic)이라는 가구 회사도 인수하여 주방 시스템 가전 사업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 기업가 정신, 과감한 실행력, 사업간 시너지

기업가 정신과 과감한 실행력, 사업간 시너지는 신흥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또다른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웨이의 CEO인 런전페이(任正非)의 경영 철학은 ‘늑대론’ 으로 압축된다. 세계 3대 통신 장비 업체가 되려면 임직원 모두가 늑대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늑대처럼 예민하게 제품 개발과 시장판단을 하고, 늑대처럼 과감한 공격 정신을 가지며,늑대 무리처럼 임직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홍하이의 CEO 궈타이밍(郭台銘)도 30년간 주 6일, 매일 15시간씩 업무를 처리해온 일중독자로 유명하다. 그는 앞으로도 공격 경영을 계속하여 연 30%이상의 성장세를 지속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또한 홍하이는 CEO의 강력한 실행력 하에 사업부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성장해 왔다. 예를 들어 한번 확보된 고객에 대해 관련 사업부들의 제품을 추가 공급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증대시켰다. 홍하이의 자회사로 LCD 모듈, 모니터를 생산하는 이노룩스(Innolux)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계열로 편입된 지 4년 만에 매출 50억 달러를 넘보고 있다.

기존 주력 제품군과 신흥 시장에 경계 경보

물론 모든 신흥 도전자들이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창홍(Changhong), TCL, 콩카(Konka) 등 1990년대 말 주목받았던 중국 기업들이 최근 약세인 것처럼, 신흥 도전자들의 상당수는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쟁에서 살아남은 상위의 신흥 도전자들은 전자산업의 메이저 리그로 진입하며 더욱 맹위를 떨칠 것이다. 이미 위협은 시작되었다. <그림 3>처럼 글로벌전자 산업 300위권 내의 대만, 중국 기업의 수는2000년 30개에서 2005년 48개로 증가했고, 100위권 내 기업도 2000년 불과 4개에서 2005년 14개로 크게 늘었다. 한편 한국의 300위권 전자기업은 9개에서 7개로 오히려 감소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들이 일본, 미국 기업들을 위협한 것처럼, 향후 이들은 향후 한국 전자 기업들의 글로벌 사업에 있어 상당한 골치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제품 측면에서 PC, DVD, 백색가전 등성숙기 제품 뿐만 아니라 평판 TV, 휴대폰, MP3 플레이어 등 기존 주력 제품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위협당할 소지가 있다. 주력 제품들이 성장기 후반에 접어들면 기업간 기술 격차가 축소되고 가격 경쟁이 본격화된다. 신흥 저원가 경쟁자들의 강점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시장 측면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전략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저원가 경쟁자들이 가격에 민감한 선진국 저가 시장과 신흥국 시장을 중심으로 공세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터키, 대만 기업들은 최근 상대적으로 선진 기업들의 입김이 덜한 동남아, 중동/아프리카, 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공략을 강화하는 양상이다.

아울러 기존 선진 기업들이 대만, 중국 기업들을 활용해 경쟁력을 제고하는 추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진 기업들은 제조 부문의 약점을 대만, 중국 기업에의 아웃소싱을 통해 보완할 것이다. 이를 통해 애플이나 모토롤라처럼 기존 강점인 브랜드 마케팅, 고객 솔루션 개발, 제품/기술 혁신, 강자간 제휴/협력에 집중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하여 차별화하려할 것이다. 나아가 대만, 중국 기업들의 제조 대행으로 시장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시장 교란자가 등장할 가능성도 주의해야 한다. 최근 북미 LCDTV 시장에서 비지오, 웨스팅하우스, 폴라로이드 등이 대만, 중국 등에서 제조된 평판 TV를 자신들의 브랜드만 붙여 저가에 판매하여 가격 질서를 교란하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기업만의 차별적인 대응이 필요

그렇다면 한국 전자 기업들은 신흥 저원가 기업들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 기업들이 원가경쟁으로 맞불을 놓기란, 쉽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될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 환경, 원가 입지, 성장 단계상이미 저원가 경쟁을 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고, 그간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조, 제품기획/마케팅,R&D 차원에서 신흥 도전자와는 차별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제조 측면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강점인 제조 역량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여 초제조기업(Super Manufacturing Company)로의 진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사회 환경상 근로 시간의 증대나 인건비 수준의 억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숙련 제조 인력의 활용이나 유연성 제고 등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최근 일본 기업들의 제조 역량강화 노력을 주목해볼 만하다. 즉 캐논의 셀(Cell) 생산 방식처럼 공정 혁신을 통해 제조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든가, 샤프처럼 부품-세트간 일관 생산 체제의 잇점을 극대화하거나, 위클리 생산 체제를 추구하는 마쓰시타처럼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성장 추세인 저가 시장에 있어 Cheap &Chic 형태의 차별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Cheap &Chic이란 “싸고 세련된 제품” 을 말한다. 1990년대 이미 저가 경쟁이 시작된 패션, 유통, 항공 산업에서는 최근 최저가 제품에서 Cheap & Chic 제품으로 트렌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격 경쟁 격화로 업체간 가격 차이가 작아지면서, 소비자들은 최저가가 아니라도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제품을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패션 산업에서 GAP, 막스앤스펜서(Marx & Spencer) 대신 자라(Zara), H&M이 뜨고, 유통에서 월마트(Walmart) 대신 타깃(Target)이 부상하며, 항공에서 사우스웨스트(Southwest) 대신 젯블루(Jet Blue)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향후 전자 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흥 저원가 기업들의 최저가 공세에 대해, 우리는 그 다음에 도래할 트렌드인 Cheap & Chic을 먼저 구현하여 그들을 압박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원가 기술과 개방형 혁신 등 R&D에 기반한 근본적인 원가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인건비 위주의 제조 부문 원가 절감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구매 부분 원가 절감도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부분은 R&D이다. 첨단 기술 개발도 중요하나, 끊임없이 제품 가격이 하락하는 디지털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회로 재설계, S/W화, 플랫폼화 등 설계 단계부터 소요원가를 최소화시키는 저원가 기술의 개발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또한 외부의 소비자, 협력사, 연구기관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체제의 구축으로 혁신을 가속화하고 R&D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나준호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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