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구경하다가…하루가 짧네!
전주 한옥마을…골목마다 박물관·체험관
전주시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있는 한옥마을은 예향 전주의 멋과 풍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한옥 사이로 난 고샅길을 거닐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다양한 체험시설도 들어서 있어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다 보면 하루가 짧다.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 전주비빔밥, 담백하면서도 산뜻한 맛을 자랑하는 콩나물국밥도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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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치고 잔치를 벌였다는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주 한옥마을의 모습. |
전주 풍남동과 교동 일대 한옥마을은 전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다. 7백여 채의 한옥이 모여 있는데 한나절 여유롭게 거닐며 예향 전주의 멋과 풍류를 느껴 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옥마을의 유래는 1910년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중앙동 일대로 진출하고 상권을 차지하게 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한옥마을이 만들어졌다.
한옥마을을 그저 기와집들의 집단지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각종 전시시설과 박물관, 체험관 등이 있어 꼼꼼히 돌아보려면 하루가 족히 걸린다. 여행의 시작은 경기전(慶基殿)이다. 조선왕조의 고향과 같은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태종 10년(서기 1410년) 창건됐다.
경기전 뒤로 최명희문학관과 전통술박물관
경기전의 태조 어진은 몇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는데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는 무주의 적상산성으로 옮겨졌고, 영조 43년(1767년)의 정해대재 때는 명륜당으로 옮겨졌다. 고종 31년(1894년) 동학혁명 때는 완주의 위봉산성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현재 경기전의 어진은 고종 9년(1872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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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은 조선왕조의 고향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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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고샅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는 것이다. |
경기전은 한강 이남에서 유일하게 궁궐식으로 지은 건물이기도 한데,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과 시조비, 경주김씨의 위패가 봉안된 조경묘와 예종대와 태실비 등이 있다. 경기전 정문 앞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경기전 뒤로는 교동아트센터와 최명희문학관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교동아트센터는 갤러리와 세미나실 등을 갖춘 2층짜리 아담한 건물로 각종 예술 관련 행사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예술인들이 직접 들어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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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통술박물관에 전시된 술관련 유물. |
최명희문학관은 <혼불>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최명희(1947~1998)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그의 육필 원고를 비롯해 작가의 다양한 유품을 전시하고 있어 1년 내내 문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옥마을에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많다. 그중 전주전통술박물관은 호남 유일의 전통술 전문박물관으로 향토주를 마셔 보고 살 수 있는 곳이다. 술박물관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전주한옥생활체험관은 양반집에 하룻밤 머물며 공예와 다례 등 전통생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전국에 숙박시설로 활용되는 수많은 고택이 있지만, 규모나 시설 면에서 으뜸인 곳은 전주한옥마을이다. 한옥생활체험관 외에도 마지막 황손 이석이 살고 있는 승광재를 비롯해 동락원, 학인당, 아세헌 등 모두 9곳에서 한옥숙박체험을 해 볼 수 있다. 한옥마을이 초행이라면 경기전 앞이나 한국전통공예전시관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러 한옥마을 안내지도를 받아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한옥마을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오목대에 올라 보자. 전주공예품전시관 맞은편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10여 분 오르면 된다. 이성계가 고려말 우왕 6년(1380년) 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자신의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이성계는 한나라 유방의 시를 읊으며 나라를 세우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고 한다.
영화 <편지>의 촬영 무대 전동성당
전주향교도 가까우니 꼭 찾아보자. 중국 7현과 동방 18현 등 50인의 유학 성인의 위패를 모신 큰 규모의 향교다. 우리나라에서 온전히 보존된 향교 가운데 으뜸이라고 한다.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애초 경기전 옆에 있었으나, 한차례 외곽 이전 뒤 1603년 현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향교 내에는 다섯 그루의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향교 내 서문 앞 은행나무는 수령이 4백년이나 된다.
경기전 맞은편에 전주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인 풍남문이 있다. 고려 공양왕 때인 1389년 처음 창건되었는데 당시 전주부성을 쌓으면서 4대문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졌다.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남대문과 같은 형태적 특징을 보인다. 1905년에 동, 서, 북문은 철거되고 남문만이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풍남문은 선조 30년(1597년) 모두 불타버렸는데 현재의 모습은 1978년에 복원된 것이다. 보물 제308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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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은 영화 <편지>의 촬영 무대로도 유명하다. |
부드러운 곡선의 지붕들로 가득한 한옥마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이 눈에 띈다. 전동성당이다. 1914년 보두 네 신부가 지었는데 성당의 기초는 전주 시내 성문과 성벽이 헐리면서 나온 돌과 흙을 사용했으며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했던 포와넬이 맡았다. 비잔틴풍의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구한말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던 때, 전주는 호남 지역의 천주교도들의 중심지였다. 많은 사람이 탄압으로 피를 흘렸던 역사의 중심에서 전동성당은 한국 최초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을 기리기 위해 이들이 피를 흘린 순교터에 세워졌다. 한때 영화 <편지>의 촬영 무대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전주는 조선시대부터 한지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교통이 편리하고 한지의 원재료인 닥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경상도와 함께 한지의 70퍼센트 이상을 생산했다고 한다. 전주한지박물관은 한지공예품과 한지제작도구, 고문서, 고서적 등 한지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한지제작 체험도 즐길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또한 다양한 주제로 한지 관련 특별전을 열고있어 방문해 볼 만하다.
모주 곁들인 콩나물국밥은 담백하고 얼큰
전주는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대표음식이라면 단연 비빔밥. 비빔밥은 전주와 진주, 해주의 것이 유명한데 이 중에서도 전주비빔밥은 한 단계 높은 자리를 차지해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놋쇠 대접에 담긴 흰밥과 그 위에 그림처럼 올려진 선홍빛 육회, 아삭한 콩나물, 얌전하게 부친 황백지단과 치자 물들인 청포묵 등을 보고 있노라면 비비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콩나물과 밥을 넣고 갖은 양념을 곁들인 전주콩나물국밥은 담백하고 얼큰하면서도 산뜻한 맛이 특징. 애주가들의 해장거리로 사랑받고 있다. 또 콩나물국밥과 함께 곁들여 마시는 모주는 막걸리와 한약재, 흑설탕을 넣고 끓여 텁텁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낸다. 남부시장 근처에 콩나물국밥거리가 있다.
글과 사진 최갑수 (시인ㆍ여행작가)
제공:글·사진: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