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로렐라이 언덕을 꿈꾸며
전설 따라 흐르는 4대강
우리나라의 강은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의 소재이자 터전이 되어왔다. 4대강 살리기는 그러한 문화를 되살리고 더욱 꽃피게 하는 ‘4대강 문화 살리기’이자 문화콘텐츠로서의 4대강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여러 문화 분야에서 4대강이 어떤 의미를 지녀왔는지 탐색해본다.<편집자주>
4대강은 이야기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란 신화, 전설, 민담 등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독일의 관광 명소들 가운데 하나인 로렐라이 언덕. 그러나 실제로 로렐라이 언덕 근처를 가보면 그저 평범한, 다소 가파른 강변 언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언덕이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지니면서 문화적 의미와 관광 산업적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다만 그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다. 우리의 4대 강에 유역에도 예로부터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이순신 장군과 영산강 횟가루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적은 군사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전술 전략을 구사하셨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영산강에 얽힌 일화가 있다. 영산강에 횟가루를 대량으로 뿌려 넣어 조선 병사들이 밥을 해먹는 쌀뜨물로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영산강을 따라 흘러오는 희뿌연 물을 보고 왜군들은 조선 병사들의 숫자가 엄청나다고 판단하고, 섣불리 대적해 오지 못했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은 목포의 노적봉 전설, 즉 낟가리를 가득 쌓아 조선 수군의 식량이 풍족함을 보여 왜군의 사기를 꺾었다는 전설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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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전설이 흐르는 영산강변 |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위하여 싸울 때, 후백제 견훤과 싸우던 이야기가 전설적으로 영산강 유역 일대에 전해진다. 견훤에게 포위당해 위기에 빠진 왕건이 잠들어 꿈을 꾸는데 도사가 나타나 “대업을 이루려는 장군이 잠을 자면 되겠는가. 지금 강물이 빠졌으니 군사를 이끌고 강 건너 무안 파군천에 진을 치고 매복해 있으면 대승을 거두리라”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사의 말대로 매복해 있으니 견훤의 군사들이 오기에 기습 공격을 하여 왕건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왕건이 꿈에서 물을 건넜다는 뜻에서 꿈 몽(夢) 여울 탄(灘), 즉 몽탄이라 부르는 지명이 영산강에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이며, 실제 전투 및 전쟁 상황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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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탄 근처의 영상강 |
낙동강 회화나무 베면 큰일난다?
낙동강에는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경북 예천군의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삼강(세 강이 만나는 곳)에 얽힌 전설이다. 이곳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던 배들이 반드시 지나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술 한 잔을 하고 가기도 했던, 말하자면 낙동강 수운의 정류장 구실을 하던 곳이다. 이 삼강 나루터 및 삼강주막에는 수령 500년에 달하는 회화나무가 지금도 서있다 한다.
전설인즉, 약 300년 전 한 목수가 그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돈도 많이 벌고 사고 당하는 액운도 멀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삼강 나루 주민들은 그 나무가 영험한 나무이기 때문에 베지 말라 말린 것은 당연한 일. 그 나무는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베리라 마음먹고 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는데,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이 꿈에 나타나 꾸짖었다. “네가 이 나무를 베면 제 명에 목 살리라.”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깬 목수는 그 길로 그냥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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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킴이로 수 백년간 있어온 낙동강 삼강 주막의 회화나무. 사진 오른쪽은 세 물줄기가 만나 장관을 이루는 삼강다리 하류 |
금강에 얽힌 전설로는 그 하류인 용당포가 무대가 되는 전설이 있다. 착한 농부 부부가 어느 날 밤 꿈에서 백발노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빨리 떠나라. 날이 새기 전에 이곳은 바다가 될 것이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는데, 방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농부는 가족을 깨워 급히 도망했다. 날이 밝을 즈음 자신들이 떠나 온 용당포 근처에서 커다란 소리가 나면서 산이 무너지고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바닷물이 밀려와 용당포 일대가 온통 물로 가득 차 버렸다. 전해 내려오기로는 이것이 오늘날 금강이 생긴 연원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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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하류의 용당포(군산) |
도미부인이 도강한 곳은 한강 어디?
한편 한강에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지만, 그 가운데 우리 고대사와 관련하여 오늘날 팔당댐 및 팔당대교 근처의 ‘배알미리’ 마을과 ‘도미진’에 얽힌 전설이 각별하다. 백제 개로왕(근개루왕)이 도미라는 백성의 아내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것을 보고 탐을 냈지만, 도미 부인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왕은 도미 부인을 빼앗고 싶어 갖은 수를 다 썼지만 도미 부인은 끝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에 화가 난 왕은 도미 부인의 남편, 즉 도미의 눈을 상하게 하고 귀양을 보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도미 부인은 겨우 탈출하여 바로 배알미리 나루에서 남편 도미와 함께 배를 타고 물을 건너 도망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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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부인 전설이 내려오는 한강 배알미리(팔당댐 근처) |
서울을 흐르는 한강 유역의 강서구 가양2동에는 투금탄 전설, 요컨대 금 덩어리를 강에 던져 버린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 이조년. 이억년 형제가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주워 둘이 나눠가졌지만, 강을 건너다가 아우가 금덩이를 한강 물에 던져 버린 것이다. 동생의 말은 이러했다. “금을 주운 뒤부터, 형이 없었으면 내가 금을 독차지할 수 있었는데 하는 나쁜 마음이 들어서 금을 강물에 던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형도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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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금탄 전설이 내려오는 한강 가양2동(가양대교 근처) |
4대강은 이야기 보고(寶庫), 물길따라 이야기 보따리 풀어내야
물론 이상과 같은 전설들을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기는 힘들다. 예컨대 도미 부인 이야기만 해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성 밖으로 도망치다가 잡혀 죽은 개로왕에 대해 고구려 입장에서 생겨난 전설일 수 있는 것이다. 왕건과 견훤에 얽힌 전설 역시 고려 왕조를 창건한 왕건의 관점에서, 즉 역사의 승자 입장에서 생겨난 전설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위에서 말한 몇 가지 강에 얽힌 전설들도 그 줄거리는 다소 다르게 다양하다. 요컨대 어느 하나의 확정된 이야기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그 지역에 전해 내려오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변화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4대강 유역을 따라 무수히 다양한 전설, 민담, 신화들이 전해 내려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대강은 이야기를 따라 흐르는 강인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러한 이야기를 살리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4대강에 얽힌 옛 이야기들이 단지 지나간 과거의 옛날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다다가고, 나아가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이 보여주듯 세계적인 이야기의 보고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이루고자 하는 중요한 목적이 아닐 수 없다.
글 : 문화체육관광부 / 사진 : 권태균